무명 베토벤을 알리는 데 앞장섰던 베를리오즈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콘서트가 기획되고 관련 저서들이 쏟아진다. 전 세계는 그야말로 베토벤 축제 중이다. 이렇게 모두가 기리는 위대한 인물로 자리잡은 베토벤이지만, 그 역시 생전에는 무명이던 시절이 있었다. 대표작 〈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이렇게 적는다. “그 당시 프랑스에서 베토벤의 작품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 훌륭한 음악을 듣는 즉시 음악가들 대부분이 얼마나 비판을 해댔는지 지금으로서는 생각도 못 할 것이다.” 전혀 알려지지 않고 비판을 받는 베토벤의 모습이란 현재 우리에게 매우 낯선 풍경임이 틀림없다.
‘거장이 만난 거장’ 여섯 번째 책은 베를리오즈가 만난 베토벤이다. 베를리오즈는 의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의학을 공부하다가 글루크, 스폰티니 등의 오페라에 매료되어 뒤늦게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작품들은 당시의 정통 음악 어법을 벗어난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지휘자와 음악 평론가로도 활동하며 시대를 앞서나간 인물이었다. 낭만주의 시대를 살아낸 예술가답게 그는 보수적 음악가들의 무지와 편견에 맞서 당대 음악을 옹호했으며, 베토벤 역시 그 대상 중 하나였다. 당시 프랑스 비평계에는 베토벤의 음악을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베를리오즈는 여러 매체에 베토벤에 대한 호평과 찬사의 기사들을 기고하고 직접 그의 작품을 지휘하며 작곡가를 알리고 작품을 이해시키는 데 힘썼다.
『베토벤과 아홉 교향곡 _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은 베를리오즈의 평론집 『노래를 가로질러A travers chants』(1862)에 실린 베토벤 관련 평론 다섯 편과 그의 초기 평론 중 하나인 베토벤 전기를 한데 엮은 것이다. 앞의 다섯 편은 1837-1860년에 걸쳐 〈가제트 뮈지칼Gazette Musicale〉〈주르날 데 데바Journal des debats〉 등에, 마지막의 ‘베토벤 전기’는 1829년 세 차례에 걸쳐 〈르 코레스퐁당Le Correspondant〉에 게재되었다. 이 가운데 베토벤의 교향곡 아홉 편을 분석한 ‘베토벤 교향곡’이 이 책의 뼈대를 이룬다. 『단순성과 구성: 루소와 디드로의 언어와 음악론 연구』로 파리 제4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충훈 한양대 교수가 원문을 우리말로 충실하게 옮기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과 함께 악보 및 교향곡 자료를 보충하였다.
프랑스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 남프랑스 라코트생탕드레에서 의사인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을 의사로 키우기 위해 파리로 보냈지만, 그곳에서 글루크, 스폰티니 등의 오페라에 매료되어 결국 작곡가의 길로 들어선다. 1826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1830년 네 번째 도전 끝에 칸타타 〈사르다나팔의 죽음La Derniere nuit de Sardanapale〉으로 ‘로마 대상’을 수상, 로마 유학의 기회를 얻지만 3년의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온다. 일찍이 베토벤을 알아보고 파리 음악원 시절 작곡가의 후기 현악 사중주를 연구한 것 외에도 당시 베토벤을 받아들이기를 꺼리던 프랑스 비평계에 반발, 직접 평론 활동에 뛰어들어 여러 매체에 이 작곡가에 대한 호평과 찬사의 기사들을 기고한다.
1830년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다가 배역을 맡은 여인에 대한 짝사랑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표작인 〈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을 작곡한다. 1834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이어가 〈이탈리아의 해럴드Harold en Italie〉(1834), 〈레퀴엠Requiem〉(1837),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1838) 등을 썼으나 마지막 작품이 참패하면서 한동안 침체기를 겪는다. 이후 외국으로 연주 여행을 떠나 1842-1843년에는 독일 각지에서 연주를 하면서 〈로마의 사육제 서곡Le Carnaval romain: Ouverture〉을 작곡하였다. 1845-1846년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에서의 성공적인 연주 여행에 자신감을 회복, 1846년에 일시 귀국하여 오페라 〈파우스트의 겁벌La Damnation de Faust〉을 발표하지만 비평계의 극찬에도 불구, 흥행에는 실패한다. 1854년 3부작 오라토리오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L’Enfance du Christ〉이 비로소 파리에서 성공을 거두고, 만년에는 2부작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Les Troyens〉 작곡에 열중하였으나, 살아생전 온전히 무대에 올리지는 못한다. 1867-1868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러시아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연주 여행에 종지부를 찍는다. 대표 저서로 《근대 악기법과 관현악법Grand traite d’instrumentation et d’orchestration modernes》(1844), 《회상록Memoires》(1870)이 있으며, 《노래를 가로질러A travers chants》(1862)를 비롯해 매체에 발표한 글들을 묶어 만든 여러 권의 평론집이 있다.
음악
베토벤 교향곡
베토벤의 삼중주와 소나타에 대한 몇 마디
〈피델리오〉 - 베토벤의 3막 오페라
토성 고리 속의 베토벤 - 영매들
베토벤 전기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