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남과의 연애, 형광등 불이 켜지더라!

꽃은 가까이 할수록 예쁘지만, 나무는 멀리 할수록 멋있다.

꽃은 향기를 맡아야 하고, 꽃잎 사이사이 겹겹이 쌓인 비밀을 궁금하기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예쁘다. 멀리서 보면 작은 물감 한 방울 같지만 가까이 보면 세밀하게 그려진 창조물이라서 그렇다. 반면에 나무는 가까이 보면 도대체 무슨 나무인지도 모르고 하나같이 딱딱한 껍질에 커다란 잎이 무성하여 해를 가린 공간만 제공하기 일쑤다. 매력이라곤 하나도 없으며 꽃을 볼 때 느끼는 세밀한 아름다움이 없다.

하지만, 나무를 몇 걸음 뒤에서, 그래도 눈에 안 들어온다면 조금 더 먼 거리에서 한눈에 바라볼 때 비로소 그 진가를 알게 된다. 꽃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커다란 줄기에 두꺼운 나뭇잎, 꽃잎의 수백 배, 수천 배를 자랑하는 잎사귀들이 모여 햇빛을 가리고 그늘을 만들었다는 걸 보게 되는 순간이다. 꽃은 가까이 할수록 예쁘기에 여자로 비유되고, 나무는 멀리할수록 진가를 깨닫기에 남자로 비유되는 이유다.

그런데, 요즘 꽃과 나무가 바뀌는 중이다.

남자들이 피부관리와 색조화장 메이크업을 시작하나 싶더니 TV드라마와 영화들이 연하남을 이야기하고, 드디어 우리 주위에 연하남 연상녀 커플들이 늘어났다. 게다가 글로벌 불경기와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오로지 스펙만을 놓고 달려왔던 남자들 역시 어깨 쳐진 후에 힘 센 누나들을 찾는 풍조까지 생겼으니 바야흐로 연상녀 ‘갑’, 연하남 ‘을’인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연상녀 연하남의 사이엔 사회적 편견(?)으로 치부되는 ‘나이 차’라는 문제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나이 차에 대한 반론으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곤 하지만 여전히 연상녀 연하남 커플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헷갈리기 매한가지다. 연상녀 연하남 커플의 급증 분위기 속에 누나와 남동생으로 바라본 것인지, 아니면 사랑만으로 그들을 축복하면 되는 것인지, 조선 시대엔 ‘민며느리’가 있었다며 전통의 부활 측면으로 봐야할 것인지, 연상녀 연하남 커플을 이야기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언니는 여럿인데,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한 명의 ‘언니’다. 말하는 사람은 언니다. 그 이유는 ‘언니’의 이야기가 더없이 소중해서 언니들 입장에서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연하남과 연애를 했거나 또는 현재도 진행 중인 언니들이 연하남과의 만남이 아직 준비 안 된 다른 언니들에게 전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테이블 아래로 손을 딱 잡는 거야. 그 순간 애가 남자로 보이네?”

이 책은 술자리 모임에서 연하남을 만난 언니의 연애경험담을 들으면서 시작된다. 홍대 삼거리에서부터 강남 언덕 호텔까지 날고 긴다는 유명 클럽(Club)과 핫 플레이스(Hot Place)를 넘나들며 타고난 미모에 빵빵한 몸매를 가진 어여쁜 누나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자주 만나고 자주 스치며 ‘누나 밥 사줘요!’라고 말해도 남자 입장에서 전혀 어색하지 않은 언니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다.

“집에 화장실 전등이 고장 났거든. 그래서, 하루는 집에 바래다준 연하남에게 온 김에 형광등 좀 바꿔 달아달라고 했어. 근데 이게 무슨 난리니? 집에 가서 스위치를 딱 켜는데 화장실 전등이 쫙 들어오는 거야. 나 어떻게 해야 했을까?”

누나는 그때 술도 마셨겠다, 술의 힘을 빌려 연하남에게 이야기했다. 다음 날 아침까지 화장실 같이 쓰는 사이가 되자고.

“근데, 내 몸에 연애 세포가 다 죽은 지 오래인 걸로 알았는데, 심장이 뛰는 거 느끼고 깜짝 놀랐어. 나 어릴 땐 번개처럼 눈앞이 번쩍하며 연애가 시작되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형광등처럼 깜빡깜빡 여러 번 켜지더라.”

그날 이후, 언니의 모습은 지인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았다. 후배들 사이에 모임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던 누나(또는, 언니)가 연락이 뜸해지더니 몇 달 뒤 후배들 모두에게 카톡 메시지가 날아왔다.

‘난데없이 단체 카톡이라니?’

아뿔싸. 언니에 대한 궁금증은 오래 가지 않았다.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아하니 그 언니 옆엔 처음 보는 남자, 그것도 솜털 보송보송하게 생긴 어린 남자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언니의 프로필 사진은 어느덧 커플 사진으로 바뀐 상태였고, 그룹채팅으로 모인 사람들은 그날, 평소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이 많은 ‘언니’의 결혼식 날짜를 통지받았다. 시치미 떼고 청첩장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도 없다. 카톡 대화창을 캡춰해두고 자기 결혼식에 온다고 한 후배들 이름 다 체크할 거라는 언니의 엄포가 (버럭) 이모티콘과 (썩소) 이모티콘과 함께 화면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이 글은 철저히 연상녀 언니들만의 파란만장한 연하남과의 연애 후일담이다.

언니보다 나이 많은 괜찮은 오빠들은 이미 연애 중이거나 결혼한 뒤인 게 사실이지만, 그 나이 때까지 결혼 안 하고 싱글인 오빠들은 티격태격 의견차이가 많아서 더더욱 싫다던 언니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언니들의 이야기들이 현실에도 이뤄져, 서른을 넘기고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언니, 마흔을 넘긴 언니가 20대 연하남이랑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연하남과 사랑에 빠진 그 언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론, 이 책에는 언니의 친구들 이야기도 있다. 연하남이랑 알콩달콩 연애하며 이 시대의 여성상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겠다는 자랑스러운 언니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래서일까? 패션스타일 아이템 중에 가우초 팬츠(Goucho pants)라는 바지가 있는데 요즘 우리 주위에 언니들은 영락없이 가우초를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건 바지 품이 넉넉한 7부 길이의 바지를 말하는데, 남미 지역의 팜파스 지방에 목동들을 ‘가우초’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 세상의 남자들이 그동안 맡았던 사회적 역할을 이제부턴 언니들이 대신하게 되었다는, 사회적으로도 파워여성이 등장했다는 사실을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또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고르기아스(Gorgias)가 말하길 ‘진리는 알 수가 없는 것이라서 누군가 진리를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진리가 아니다’라고 한 것처럼 남녀 사이엔 어떤 진리가 없어서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혹은, 철학자 헤겔(Hegel)의 이야기 중에 ‘현실이 이성적이고, 이성이 현실적이다’라는 말을 보더라도 남녀의 사랑은 애초에 현실 밖에서 시작하기에 ‘이성적이지 않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책에서 듣는 연하남과 연상녀의 사랑에 대해, 남녀의 만남에 대해 기존의 패션스타일과 철학자들의 관념을 비유하는 건 개념설정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사실이다. 지금 그들이 사랑한다는 것, 그들이 연애 중이란 사실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독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엔 느려터진 형광등 대신 ‘불꽃’ 튀는 순간을 보게 되기를 바라본다. 언니들의 연애가 깜빡깜빡 불 들어오는 형광등에 더 이상 비유되지 않고, 번쩍하는 섬광처럼 남자와 여자의 뇌리를 스치는 날카로운 뜨거움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서 그렇다.

[목차]

ㆍ 작가의 말_
ㆍ 연하남과의 연애, 형광등 불이 켜지다!
ㆍ“너 집 어디니? 누나가 바래다줄게”
ㆍ 요리하는 남자가 멋있다는 생각은
네가 처음이야
ㆍ 능력만 있는 깐깐한 오빠
vs. 능력은 없어도 열정은 있는 연하남
ㆍ“누나가 사줄게”
ㆍ 연하남에게 누나가 예뻐 보이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ㆍ 오빠를 좋아하는 여자
vs 연하남을 좋아하는 여자
ㆍ 20대 초, 20대 후,
남자는 최소한 누나를 두 번 찾는다
ㆍ 누나가 중학교 입학하고 네가 태어났다
ㆍ 나란 여자, 너의 이야기 들어주는 누나
ㆍ 누나는 자외선 차단제,
연하남에겐 태닝오일
ㆍ "내가 네 엄마냐?"
ㆍ 남녀의 나이 차이,
누가 나서서 규칙 좀 정해 봐
ㆍ 에필로그_
운명적 만남은 없다, 그대가 원하는
남자들의 it place로 가라, 여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