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한국 인문학은 이른바 ‘문화로의 전환’을 맞이했다. 시야를 넓혀 보면 서구에서 문화주의가 세계와 역사를 설명하는 패러다임으로 부상한 것은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문학 전반에서 문화의 부각은 세계사적 현상이지만, 왜 문화에 주목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갈래의 답변이 존재한다. 소비자본주의와 대중문화가 번성하면서 팝음악, 영화, 패션, 스포츠, 게임 등 다양한 문화적 산물이 국경을 넘어 유통되고 소비되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연구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전쟁, 혁명, 계급투쟁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 아래에서 장구한 흐름으로 지속되는 일상문화의 견고함이 새삼 관심을 끌기도 했다. 문화가 아우르는 층위는 넓고도 깊다. 문화는 서구중심주의와 식민주의 극복을 위한 모색에서도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는데, 에드워드 사이드의 연구가 선도적으로 보여주었듯, 근대세계의 식민지적 통치 질서는 정치?경제적 지배만이 아니라 문화 제국주의를 통해 작동해왔기 때문이다. 본서는 이처럼 폭넓은 문화연구의 갈래들 중에서도 ‘근대전환기’라는 특정한 시간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근대’를 정태적인 이념형이나 완성형, 중세 및 근세와 말끔하게 분절되는 역사적 시기구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속도와 리듬을 지닌 이질적 시간성들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역동적 변화 과정으로 분석하기 위함이다. 수록 논문들의 비중이 보여주듯, 본서의 기획에는 한국이라는 장소성 또한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장소는 고립되고 자기완결적인 정체성이나 ‘순수한’ 문화의 저장소가 아니라, 세계 내 다른 장소들과의 내재적 관계 속에서 다양한 문화의 파동들이 끊임없이 밀려들고 흘러가는 열린 장소일 뿐이다. 동시대의 동아시아나 ‘서양’ 등 세계의 다른 장소들이 근대전환기 한국의 문화적 메타모포시스를 탐색하기 위한 맥락이자 참조점으로 부단히 소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