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없이 다정한 남편이 있다.
산후 우울증을 앓는 아내가 요양할 수 있도록 으리으리한 저택을 석 달간 빌린 세심하고 능력 있는 의사다.
이런 남편의 아내라면 날마다 행복에 겨워 살지 않을까.

그런데 이들 부부의 관계가 조금 이상하다.
아내는 아프다는데 남편은 아내가 별로 아프지 않다고 한다.
아내는 글을 쓰고 싶다는데 남편은 쓰지 말라고 한다.
아내는 아랫방에서 지내고 싶다는데 남편은 윗방에서 지내라고 한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살뜰히 챙겨 주는 건지, 하나부터 열까지 통솔하는 건지 헷갈린다.
그리고 남편의 그늘 속에서 해를 보지 못한 식물처럼 메말라간다.

남편이 정해준 방에서 온종일 지내며 누런 벽지만 하릴없이 쳐다보는 아내.
아내는 결국 어떻게 될까?

샬럿 퍼킨스 길먼이 1892년에 발표한 <누런 벽지>는 발표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읽히는 불후의 고전이다.
길먼의 대표작이자 페미니즘 문학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이 작품은 하루하루 피폐해지는 주인공의 심리를 긴장감 넘치는 문장으로 그려냈다.

비극으로 치닫지만 어쩐지 통쾌한 기분이 드는 <누런 벽지>의 짜릿한 결말을 지금 바로 확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