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에 떠난 세계여행, 그리고 새 삶
서른아홉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또 한 권의 책을 쓰고 나서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않았다. 박
사과정을 시작했던 서른 이후 학교공부와 대안학교 일, 그리고 아르바이트까지 겸하느라, 늘 시간에 쫓
기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건강에도 잘 신경을 못 썼는데 급기야 박사과정이 끝난 후에는 몸과
마음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일이 자주 생겨나기도 했다. 툭하면 장이 꼬이고 열도 많이 나고, 숟
가락을 손에 쥔 채 숟가락을 달라고 하거나 오른쪽 왼쪽이 헛갈려 운전 중에 비상등을 켜고 멈춰 섰던
날도 많았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를 이루느라 정작 행복한 삶의 다른 요소들을 다 잃은 상태였다고
할까. 그런 상태에서 나는 성취감보다는 어떤 걷잡을 수 없는 공허함과 회의감에 더 크게 빠져들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는 꿈을 안고 노력해 왔는데 당시
의 그 순간에는 정작 나 자신이 행복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멈췄다. 아픈 몸과 멀어진 인간
관계들, 말라붙은 영혼과 맞바꾼 그 자리에서 앞으로 내가 꾸어야 할 새로운 꿈은 무엇일까? 좋은 기운
한국을 떠나며 3
을 주는 선생님으로 아이들과 마주할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의 질문에 나는 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갈된 자신을 다시 채울 수 있는 다른 삶을 꿈꾸었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 다른 문
화권, 다른 인종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인류가 다 한국 사람들처럼, 나처럼 살지 않을 텐데, 다른 차원
의 사람들과 삶이 보고 싶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는지, 행복한지 진짜 살아있는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서른아홉 이르지 않은 나이에 홀로 세계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던
살림살이를 지인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아무런 아쉬움도 없이, 정상작동하지 않는 몸과 마음 그대로
가방 몇 개 챙겨서 정해지지 않은 새 길을 나섰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이제 막 시작인데, 그동안 공부한 게 아깝지도 않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늦
은 나이에 귀국한 후 다시 자리 잡기 힘들 텐데, 너무 무모한 게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나마
좋게 봐주는 지인들이 대책 없는 자유영혼이라며 포기한 듯한 격려를 해 줄 뿐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도
일리가 있었지만, 당시에 내게 가장 확실했던 것은, 대책 없는 삶을 대책 없이 버티며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깝고 무모하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삼년 여 가까이 유럽과 동남아 여러 국가들과 캐나다를 돌아다녔다. 너무 감사하게도, 원했
던 대로 다른 차원의 사람들과 사회, 자연을 만났다. 그들 덕에 어렸던 정신세계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고 몸도 회복되었다. 특히, 가장 감사한 것은 마음의 힘이 커졌다는 것이다. 일상생활도 대학교 선
생님으로서의 삶도 이제는 한결같이 즐거워졌다. 전과 달리, 있는 그대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
다고 할까. 저절로 된 것이 아니다. 기적처럼 많은 경험과 새로운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더 높은 배움과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지난 삼년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새 힘이 나고 또 행복해진다. 그 많은
일들의 의미 또한 더욱 분명해졌다. 그래서 나를 성장시킨 그 고마운 이야기들을 이제는 나누고 싶어졌
다. 특히, 내 사랑하는 조카, 민우와 소중한 대학의 제자들 그리고 지인들에게도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하
는 이야기책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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