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행 사지금 밖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습니다. 어떤 시인은 이 광경을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하면서, 까투리, 매추래기 새끼들, 낯이 붉은 처녀 아이들, 큰놈 눈물, 작은놈 웃음, 큰 이얘기, 작은 이얘기, 산, 청산의 소리가 다 그 수부룩이, 폭으은히,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 속에 안끼어 드는 소리가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슴에는 아무리 괜찮다고 다독이며 포근히 덮어도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습니다. 국가기관의 폭력으로 희생된 고 최종길 선생님을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어두운 시절에 국가기관 폭력의 희생자가 어찌 최 선생님 한 분 뿐이었겠습니까만, 우리에게는 최 선생님이 각별한 의미로 각인되었기 때문에 더욱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우리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열강하시던 최 선생님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우리는 선진 독일 민법학을 우둔한 학생들에게 가르치려고 진력하시던 최 선생님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행위기초론, 물권적 기대권, 물권행위의 독자성과 무인성 등 하나라도 더 많이 가르치려는 의욕에 넘치셨습니다. 우리는 학문의 전당 대학의 존엄을 지키려고 동분서주하시던 최 선생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 앞에서 방성대곡을 하시던 그 모습,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풀리지 않는 응어리 속에는 최 선생님을 잊지 못하는 마음만이 아니라, 그보다도 열 배, 백 배 커다란 아쉬움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최 선생님께서 지금 우리 연령만큼이라도 생존해 계셨더라면, 우리의 법학, 특히 민사법학이 지금 어떠한 모습일지 상상해보면 그 아쉬움이 한없이 불어납니다. 그 짧은 생애에서 최 선생님께서 남기신 그 많은 연구업적에 비추어보면 일찍 이승을 떠나신 공백이 얼마나 큰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 선생님의 학은을 직접 입은 제자들과 최 선생님의 업적으로 공부한 후학들이 모여 최 선생님을 기리고자 정성을 들인 글을 모아 이 책을 냅니다. 비단 최 선생님을 기리는 뜻뿐만 아니라 최 선생님의 공백을 조금이나마 메워보려고, 앞으로도 더욱 분발하여 민사법학의 발전을 위하여 진력하겠다는 다짐도 함께 하고자 합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최 선생님께서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하실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비로소 마음속의 응어리가 풀어져서 손에 손잡고,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하고 화답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2023. 12. 30.간행위원 일동최종길교수50주기추모논문집의 발간에 부쳐미하엘 라이펜슈툴** 전 주한독일대사(2020~2023)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인 1973년 10월 2일, 서울대 학생 400여 명은 박정희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권이 그 전년(前年)에 공표한 소위 유신헌법과 계엄령 선포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시민권의 회복, 공포의 대상이었던 중앙정보부(KCIA)의 폐지,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맞서서 후보로 나섰던 김대중을 1973년 8월에 납치한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했습니다. 시위는 무력으로 해산되었고 많은 학생들이 체포되었습니다. 이러한 억압된 상황 속에서도, 박정희 정권의 독재적 폭압을 잘 알고 있었던 서울대의 법학자 최종길 교수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권위주의 정권에 맞섰습니다. 그는 교수회의 석상에서 학생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하고, 정식으로 이번 폭력 사건에 대해 항의해야 하며,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불과 며칠 후, 중앙정보부의 조사를 받던 최교수는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중앙정보부는 최교수가 북한 간첩임을 자백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발표했습니다.최종길 교수의 죽음의 진실은 그의 사망 후 약 30년이 지난 2002년이 되어서야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동 위원회는 중앙정보부의 발표가 허구임을 밝혀냈습니다. 고문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최종길 교수는 허위 자백을 하지 않았고,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에 저항함으로써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것이었습니다.최종길 교수는 한국을 넘어서서 국외에서도 학자이자 학구적인 교육자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이 후원하는 연구자로서 1961년 한국인 최초로 쾰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마땅히 올해로 140주년을 맞이하는 독일과 한국의 동반자 관계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과 한국은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지만, 특히 법치주의의 원칙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양국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습니다. 독일과 한국은 이 원칙과 가치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아픈 시련의 과정을 통해 배워야 했습니다. 나치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고 1990년까지 분단의 고통을 겪었던 독일은,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는 데 오랫동안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국은 오늘날까지도 분단되어 있으며, 광복 후 1980년대 말에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오랫동안 권위주의 정권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자행된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범죄행위와 자유권 및 시민권에 대한 침해행위는 오랫동안 제대로 규명되거나 합당한 방식으로 기억되지 못했습니다.과거청산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적극적인 기억문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냥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어두운 과거를 적극적으로 마주하는 것보다 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큰 희생을 치르신 분들께는 결코 정의롭지 못한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렵게 쟁취하여 누리게 된 민주주의에 따르는 자유권을 소중히 지키기 위해서는, 최종길 교수와 같은 분들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기억은 우리로 하여금 민주주의에 따르는 자유권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눈을 돌리게 하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이러한 뜻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그리고 자신의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옹호하고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희생을 치르신 최종길 교수를 기려 살아있는 기억문화를 길이 간직하기 위해, 이 추모논문집에 기고하신 저자들께 진정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믿음 있는 친구 최종길 교수박 병 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최종길 교수와 나는 동갑이다. 대학은 한 해 내가 먼저 입학했지만 졸업은 같이 했다. 재학 중에는 서로 알지 못했는데 육군보병학교에서 만나 매우 인상 깊었다. 1954년, 4학년 2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당시의 전시문교정책에 따라 전국의 대학 4학년생 졸업예정자들을 광주에 있는 육군보병학교에 입소시켜 간부후보생 전반기 교육을 10주간 받게 하고 육군 보병 일등병으로 편입시켰다. 9월 6일부터 교육을 받았는데, 그 곳에서 최교수를 알게 되었다. 내무반은 달랐지만 같은 중대에 소속되었기 때문에 종일 같이 훈련을 받았다. 최교수는 군계일학처럼 바로 동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는데 매우 적극적이고 화술에 능했다. 거기서 보스 기질도 발휘했었다. 수료 후에는 바로 상경하여 한 달 남짓 강의를 듣고 학기말 시험을 치른 뒤 헤어졌으며 서로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최교수는 졸업 후 독일의 쾰른대학에 유학했는데 민법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금의환향하였으며 바로 모교의 교수로 자리잡아 동료교수로서 날마다 함께 지내게 되었다. 우리 두 사람은 동갑에다 의기 상통하여 이내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최교수는 민법교수로서 매우 야심차고 의욕적이었으며 사실적 계약관계 이론을 우리 학계에 처음 도입·소개하면서 참신한 독일법 이론과 열띤 강의로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의의 부담 속에서도 일찍이 교과서 집필을 진행시키고 있었던 알찬 연구 활동도 계속했으니 당시의 제3세대 민법학자로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최교수는 매우 다정다감한 로맨티스트였다. 또 그 만큼 격정적이고 주위를 휘젓기도 하였다. 1960년 후반부터는 군사정권 하에 쉴 새 없이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철야 농성을 하여 강의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는데 학생들과의 대화에는 최교수와 내가 앞장서서 나갔었다. 막판에는 비상계엄 하에 군대가 대학 안에 진주하게 되자 학생들은 등교할 수 없었고 교수들만이 날마다 출근하여 학교를 지켰다. 그래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함께 테니스를 시작하였고 거의 날마다 함께 테니스 시합을 하였다. 최교수는 호승기도 강하여 시합에 지면 씩씩거리며 흥분했는데 또 금새 잊어버리곤 하였다. 저녁에는 자주 함께 술잔을 기울였는데 주량도 나와 비슷하였으며 술좌석에서도 역시 좌지우지하였다.최교수의 교양 있는 깊은 취미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등산 취미로 이끈 것은 나였다. 가끔 젊은 동료 교수와 함께 북한산을 올랐는데 구파발을 거쳐 노적봉에 올랐다가는 불광동에 있던 나의 집으로 와서 함께 담론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1965년 1월 29일에도 이시윤 교수와 함께 세 사람이 북한산 겨울 등반을 하고 내 집에 와서 술자리를 같이 했는데, 그 날 최교수와 이 교수에게 지필묵을 내놓고 취중에 일필휘지하라고 권했다. 내 집에는 명사들의 필적을 받아 놓은 유홍(留鴻)이라는 필첩이 있었는데 그 필첩의 빈 칸에 쓰도록 권하였다. 나로서는 두 학자의 필적을 받아 길이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최교수는 ‘교우이신’(交友以信) 이라고 썼고, 이시윤 교수는 ‘학사은거’(學士隱居)라고 썼다. 지금부터 37년 전의 일이다. 최교수의 그 붓글씨는 아마도 유일무이한 것이리라. 이것은 나에게도 귀중한 재산이기도 하지만 그 자제인 최광준 교수가 원한다면 기증할 생각도 없지는 않다.최교수가 나와 함께 자주 등산하는 재미를 맛보게 될 때 산악반 학생들이 적설기 한라산 등반을 계획하게 되었다. 1966년경이라 기억되는데 등반훈련을 위하여 도봉산 주봉 아래에서 3일간 단련하기로 하여 김치선 교수·최교수와 함께 참여하였다. 추운 겨울에 텐트에서 지내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우리 셋은 학생들과 함께 무사히 훈련을 끝내고 김치선 교수와 나만이 적설기 등반에 참가했고 최교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불참하였다. 불참 이유 중의 하나가 최교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산이나 깎아지른 언덕에는 못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사실이었고 그 후로 나는 자주 높은 곳에서 최교수를 아래로 밀치는 장난을 하였다. 심지어 2, 3층의 창가에서도 밖으로 어깨를 밀치면 기겁을 하였다. 이러한 최교수가 높은 데서 뛰어내린다는 것은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얼마 전에 최광준 교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몰랐었다는 말을 들었다. 1967년부터인가 이한기 학장이 취임하고 배재식 교수가 교무 과장을, 최교수가 학생과장을 맡았는데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나는 1968년 10월에 일본 동경대학으로 1년 간 유학을 갔었고, 특히 1969년에 들어서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학원 사태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1969년 9월에 귀국하였다. 최교수는 귀국하는 나를 김포공항에까지 마중 나와서 날더러 차기 학생과장이 온다고 하기에 어리둥절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서돈각 학장이 취임하고 내가 학생과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최교수는 그 동안의 힘든 일을 회상하며 내가 학생과장직을 무사히 수행할 수 있도록 많은 조언을 해 주며 격려하여 주었다. 이때의 우정을 결코 잊을 수 없으며 ‘교우이신’(交友以信)이라고 썼던 최교수의 진면목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최종길 교수의 사인을 중정의 타살로, 그리고 중정이 최종길 교수를 간첩으로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29년만의 일이다. 아직 진상이 낱낱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뜻깊은 29주기가 아닐 수 없다. 천추에 사무치는 원한이사 그 유족보다 더 할 리가 있을 것인가마는 암울했던 정치·사회 상황을 겪어 왔던 현대 지식인 모두의 원한이요 아픔이 아닌가. 믿음으로 대하고 따뜻한 정을 풍기며 금방이라도 다가설 것 같은 최교수. 그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던 김증한 선생, 이한기 선생 그리고 같은 직장에서 하루라도 못 보면 아쉬워하며 진하게 사귀었던 전원배 교수, 김치선 교수, 배재식 교수. 이 분들도 모두 타계해 가시어 추모의 정을 더하고 아픔을 같이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안타깝고 허전하기 그지없다. 믿음의 우정으로 보답하지 못한 채 하찮은 회고를 더듬으며 진혼의 심정을 적는다.최종길 교수(1932~1973)를 추모하며엔노 아우프데어하이데 박사** 독일 훔볼트 재단 사무총장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기억에는 한 나라의 역사와 미래가 투영되어 있습니다. 최종길 교수는 1932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1955년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1957년 스위스 취리히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는 곧 독일로 건너가 1960년부터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의 국제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재단이 후원하는 연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2년간 쾰른대학교의 국제사법 및 외국사법 연구소에 머물면서, 그를 초청한 게르하르트 케겔 교수와 학문적 협업을 하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한국인 최초로 쾰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64년, 33세의 나이에 최종길은 모교인 서울대학교의 전임교수가 되었습니다. 현재 50여명의 훔볼트 동문들을 배출한 서울대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훔볼트 동문을 지닌 기관입니다.최종길 교수는 1972년 다시금 훔볼트 재단의 초청을 받아 가족과 함께 독일로 돌아와 연구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고국의 비밀정보기관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은 최종길 교수를 당시의 훌륭한 학자이자 사법(私法) 전문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재단이 1953년에 재설립된 후 현재까지 70년 동안 독일 내의 대학 및 파트너 연구기관의 연구 협력을 후원한 총 391명의 한국인 연구 펠로우 및 연구상 수상자의 한 명입니다.한 사람의 개인사(個人史)에 대한 기억을 통해 우리는 어제와 오늘의 사회적 과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최교수는 1960년대와 70년대 고국의 군사 독재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연구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때는 교육과 언론에 대한 정치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던 때였습니다. 대학 교수와 학생들이 강의실과 세미나실에서 행해지고 있던 감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자, 국가는 체포, 고문과 살해로 맞섰습니다. 최종길 교수는 학생들의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다가 권위주의 정권의 희생양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과거에 쟁취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은 그 자유의 쟁취를 위해 종종 비싼 대가를 치렀으며 ― 그들 중 몇몇은 인간이 치를 수 있는 가장 비싼 대가를 치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오늘날 훔볼트 재단은 140여 개국에서 3만 명 이상의 뛰어난 연구자들로 회원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훔볼트인(人)은 고국의 발전과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입니다. 이들은 대학교수, 연구자, 스타트업 창업자, 특허 보유자 등 다양하며, 59명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차례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회, 정부 부처 또는 정부 자문위원으로서, 위기와 갈등을 중재하거나 빈곤, 환경오염, 정치적 극단주의에 맞서 싸우는 등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연구자들은 폭력과 박해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이 위험에 처한 연구자들을 위해 “필립 슈바르츠 이니셔티브”(Philipp Schwartz-Initiative)를 마련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출신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심각한 신변 위험에 노출된 연구자들이 독일의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총 26개국에서 온 4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독일에서 피난처와 지원을 제공받았습니다.우리는 오늘날, 과거에 한사람, 한사람이 헌신하고 싸워 쟁취한 자유를 적극적으로 기억함으로써 이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前) 세대들이 겪은 불의에 대한 기억은, 우리 공동체를 보다 정의롭고 평화롭게 하기 위하여 배우게 합니다. 민주주의의 기둥인 표현과 선거의 자유, 국가권력의 분립과 시민의 공동 결정권 등을 우리는 계속해서 되새기고 공고히 해야 합니다.한국의 휼륭한 법학자이자 학구적인 교육자를 기리는 이 추모논문집에 추모사를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최종길 교수의 아들 최광준 교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다음의 사실을 언급하고자 하며 이를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최광준 교수는, 그가 처음으로 훔볼트의 지원을 받아 쾰른대학교의 국제사법 및 외국사법 연구소에서 하인즈-페터 만젤 교수와 공동연구를 하기 위해, 쾰른에 체류할 당시인 2006년부터 훔볼트 재단과 인연을 맺어 왔습니다. 그는 이후 한국과 독일 간의 학술적 교류의 유지 및 증진을 위해 지속적으로 헌신해 왔으며, 현재는 특히 훔볼트재단의 한국 학술대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은 여러 세대에 걸쳐 작동하는 국제 네트워크의 모범으로 최종길 교수와 최광준 교수를 들 수 있다는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여기의 이 추모논문집은, 최종길 교수의 적극적인 삶과 자유의 유산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기억 속에 계속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최종길 선생님을 기리며호 문 혁**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지난 40여 년 사이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 누구 하나 암울한 시대를 살았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만, 내가 대학을 다닌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의 시기만큼 젊은이들이 좌절과 울분에 젖어 있었던 적도 많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 정권에 대항해서 1960년대 중반부터 터져 나온 한일회담반대운동이 곧이어 반독재투쟁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젊은이들의 열망에 아랑곳없이 박정희 정권은 3선개헌과 이른바 10월유신 등으로 갈수록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에 열중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1973년 10월, 우리의 최종길 선생님이 국가기관의 폭력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하직하셨다. 벌써 50여년의 세월이 그 사이에 흘렀지만 여전히 최종길 선생님을 국가의 폭력적 인권탄압에 희생된 분으로 기억하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한다. 나는 조금 각도를 달리하여 최종길 선생님의 학자로서의, 대학인으로서의 면모를 추념하고자 한다.최종길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969년 1학기에 민법총칙 강의를 들으면서였다. 최 선생님은 강의 중에 독일에서 공부하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기에 무척 열심이셨다. 강의를 하실 때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셔서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아가면서 열강을 하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 부분에선가 칼 라렌쯔(Karl Larenz)의 행위기초론을 자세히 설명해 주신 것을 비롯해 학기 중에 자주 라렌쯔의 이론을 설명하셨다. 그 당시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 한 우리야 독일의 수준 높은 법학 이론을 제대로 이해했을 리가 없었지만, 라렌쯔를 얼마나 열심히 이야기해 주셨던지 그 이름이 귀에 박혔고 지금도 라렌쯔라는 이름이 나오면 당시 최 선생님의 음성과 손수건으로 땀을 닦던 모습이 떠오른다. 2학기 때 배운 물권법에서는 아우플라쑹(Auflassung)과 물권행위의 독자성과 무인성, 물권적기대권 등 독일의 물권법 제도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민법총칙과 물권법 모두 가르치려는 의욕이 넘쳐서 처음부터 너무 자상하게 설명을 하신 나머지 학기말이 되어도 진도는 별로 많이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한 주 동안 개괄적인 설명을 하여 결국 진도를 끝까지 나가곤 하셨는데, 그럴 때면 우리는 기말시험 범위가 늘어난다고 철없는 불평을 하곤 했다.1969년인가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법대생들이 동숭동 앞길에서 데모를 하고 있었다. 나는 법대 교문 밖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친구들 틈에 끼어서 날아오는 사과 모양의 최루탄이 어디로 떨어지나를 신경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문 쪽에서 소란이 일어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았다. 학생들이 모여들어 잠바 차림의 어떤 사람을 구타하더니 잠시 뒤에 그 사람의 사지를 들어 법대 안으로 운반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어떤 사복 형사가 우리가 모여 있는 한 가운데서 법대 학생회장을 잡아가려다가 몰매를 맞고 실신했다는 것이다. 그 사복형사는 대학병원으로 실려 갔고, 그로부터 잠시 뒤에 데모는 끝났지만, 바로 그 뒤에 진압봉과 방패로 중무장한 동대문경찰서 진압대가 법대 캠퍼스를 완전 포위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실신한 사복형사가 동대문서 소속이었기 때문에 동대문경찰서장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사복형사를 구타한 학생들을 잡아내겠다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대학교 캠퍼스를 신성시하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도 법대 안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교문 밖에 서서 진압봉으로 방패를 두드리며 “구타학생 나와라, 안 나오면 우리가 학교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럴 수 없다, 누가 구타했는지 모른다.”며 버티고 있었다.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 자연히 도서관에 들어가 농성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가장 바쁘게 움직였던 분이 학생과장(요새말로는 학생담당부학장)인 최종길 선생님이셨다. 교문 앞에 가서는 학교에 경찰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설득을 하셨고, 우리에게 와서는 이 신성한 대학을 경찰이 짓밟도록 해서는 안 된다면서 제발 어떤 방안을 찾아보자고 하소연을 하셨다. 교문과 도서관을 수없이 분주하게 오가던 최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아무런 해결 방안이 나오지 않자 밤늦게 도서관에 들어와서 학생들을 붙잡고 울음을 터트리셨다. 보통 울음이 아니라 통곡이었다. 어떻게 경찰이 캠퍼스에 들어올 수가 있느냐고 하시면서… 그 바람에 우리는 모두 숙연해졌다.자정이 넘어서 결국 최 선생님이 경찰과 학생들 사이에서, 학생들은 구타한 학생을 내보내거나 이름을 적어 내는 대신에 도서관에서 농성한 학생 전원의 이름을 적어 내기로 하고, 경찰은 포위를 풀고 아직 통행금지가 풀리지 않은 시각이었으므로 경찰버스로 학생들을 집 동네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기로 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이끌어 내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밤중에 경찰버스를 타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처음에는 버스에 실려 통째로 유치장으로 직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약간 있었지만 약속은 지켜졌다.그로부터 몇 년 뒤, 내가 대학원 1학년인 1972년 개교기념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법대 도서관 앞 잔디밭에 앉아 한가롭게 몇몇 친구들과 법률문제를 화제 삼아 토론 겸 잡담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몸집이 매우 좋은 사람들 한 무더기가 학교 안으로 몰려 들어오면서 교문을 활짝 열어 놓고는 도서관과 다른 건물로 흩어져 들어가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의아해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우릉우릉― 하는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뭔가’ 하고 있는데, 잠시 뒤에 교문으로 탱크들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다른 곳도 아닌 신성한 대학 캠퍼스 안으로! 상아탑에서 공부하는 우리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깔아뭉개면서…. 온 세상이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너희가 드디어 우리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망치려고 최후의 발악을 하는구나!’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운 어느 노래 가사처럼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이었다. 마침내 이른바 10월유신이라는 사태가 벌어졌다. 유신헌법안(維新憲法案)이라는 것이 나왔을 때, 우리 대학원생들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후배들을 앉혀 놓고 그 내용이 얼마나 웃기는 것인지를 설명해 주곤 했다. 물론 웃을 일이 아니라 통곡을 해도 시원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암울한 세월을 보내던 중 1973년 10월에 끔찍한 비보를 접하게 되었다. 최종길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중앙정보부에서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투신자살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다들 어안이 벙벙했지만 어차피 우리는 말을 잊은 사람들이라 여러 해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냈다.눈과 귀, 입이 봉쇄된 국내에서와는 달리 최 선생님의 작고 소식에 스승인 케겔 교수는 사인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서신을 법무부 장관에게 보냈고, 라이샤워, 박스터 등 하버드 교수들은 한국 정부에 강력한 항의를 하였다. 1년 뒤 제롬 코헨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약 3만3천 명의 미국인들이 한국전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 이를 위함이었던가? 이것이 우리의 군사적, 경제적 원조로 가능해졌고 우리가 여전히 방어를 맹세한 ‘자유세계’란 말인가?”라는 비판문을 싣는 등 국제적으로 커다란 반향이 일어났다.1977년에 내가 법대 조교로 있을 때 김증한 선생님께서 맥주를 드시면서 침통한 표정으로 최 선생님의 타계(他界)가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고 회고하셨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김증한 선생님뿐이었겠는가. 예부터 유가(儒家)에서는 군사부일체(君師父 一體)라고 했다. 불가(佛家)에서는 ‘두 사람이 1만 겁을 같이 선업을 쌓으면 부모 자식 사이가 되거나 스승 제자 사이가 된다.’고 했다. 최 선생님의 스승들은 제자를 잃었고 최 선생님의 제자들은 스승을 잃었다. 제자를 잃은 스승들의 마음이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과 무엇이 다르고, 스승을 잃은 제자들의 마음이 부모를 잃은 자식들의 마음과 무엇이 다르랴.그러나 우리가 잃은 것이 한 인간, 한 제자요, 한 스승 최종길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20여 년을 계속 젊은 세대가 좌절만을 맛보고 자라났다. 아무런 희망이나 미래상 없이 꺾이고 밟히기만 했다. 비록 민주화로 세상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최 선생님께서 통곡으로 지키고자 하셨던 대학의 존엄도 이미 짓밟힌 지 오래 되어서 이제는 학생들조차 아무런 느낌을 갖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 가는 것(諸行無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변화의 방향은 올바로 잡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학문의 신성함, 대학의 존엄이 실종된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대학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대학의 존엄과 학문의 자유를 떠올릴 때마다 최종길 선생님 생각이 더욱 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최종길 교수의 약력· 1931년 4월 28일충남 공주군 반포면 상신리 374번지에서 아버지 최상희와 어머니 성금례 사이에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다.· 1939년 4월부터 1942년 7월까지공주 반포초등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다 부친의 뜻에 따라 인천으로 이사한다.· 1942년 8월부터 1945년 3월까지인천의 송현초등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한다. 4살 연하인 그의 아내 백경자 여사도 송현초등학교의 동문이다.· 1945년 9월부터 1951년 8월까지당시 6년제였던 인천중학교를 다니고 졸업한다. 인천중학은 현 제물포고등학교의 전신이고, 인천 제일의 명문고등학교였다. 길영희 교장의 총애를 받았으며, 수재로 널리 알려진 그는 후배들에게 제물포고등학교의 자랑스런 선배였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형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간다. 학도병으로 군에 입대하여, 영어에 능한 그는 미군 웰치 장군의 통역병으로 군복무를 하게 된다.· 1951년 9월부터 1955년 3월까지 전쟁 중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고, 학업을 마친다.· 1955년 4월부터 1957년 4월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민법을 전공하는 그는 고 김증한 교수의 애제자로 총애를 받는다. 그는 대학원 시절 길영희 교장의 권유로 모교인 제물포고등학교에서 공민과 영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김학준 전 동아일보사장은 이 시절 그의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이자, 후배 중의 한 명이다. 어학에 재능이 많았던 그는 형이 근무하던 인천 동일방직에 기술고문으로 와 있던 스위스인 홀라커 씨의 독일어통역을 해 주기도 했는데, 결국 이 인연이 계기가 되어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1957년 5월부터 1958년 2월까지 스위스 취리히대학 법과대학에서 스위스 민법과 국제사법의 대가인 바더(Bader)교수의 지도를 받는다. 홀라커 씨의 주선으로 취리히에서는 에뻘리(Aeberli) 자매의 집에서 하숙을 하는데, 평생을 미혼으로 지낸 두 자매는 그를 친자식처럼 아끼고, 그의 사망 이후에도, 노환으로 별세할 때까지 해마다 그의 두 자녀의 생일과 크리스마스 때 스위스 초콜릿과 장난감을 선물로 보내준다. 그가 스위스에 채 1년도 머물지 않고 독일로 간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항상 유머러스하던 그는 스위스 친구인 베르너 부에스(Werner Buess)에게 ‘스위스는 너무 작아서, 좀더 큰 나라로 가야겠다’며 스위스를 떠났다고 한다.· 1958년 4월부터 1962년 7월 독일 쾰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스위스 취리히대학의 지도교수였던 바더 교수의 추천으로 민법과 국제사법의 세계적인 대가인 케겔(Kegel) 교수의 지도를 받는다. 1961년 2월 16일, 약관 29세의 나이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독일법학박사학위(Dr. iur)를 취득한다. 그는 1958년 새로 지어진 기독학생기숙사에서 지낸다. 유머러스하고 사교적인 성격이었던 그의 주변에는 항상 많은 독일친구들이 있었다.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케겔 교수의 추천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훔볼트장학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서, 학위 후에도 독일 쾰른대학의 「국제사법 및 외국법 연구소(Institut fur internationales und auslandisches Privatrecht)」에서 연구활동을 계속한다. 6개월 동안은 프랑스의 소르본느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하기도 하는데, 짧은 연수기간에도 불구하고 그의 프랑스어가 매우 유창했다고, 그와 함께 쾰른에서 유학 중이었던 김혜경 전 서울대 음대 교수는 회고한다. 김혜경 교수는 후에 그가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서 보필하던 고 이한기 학장의 아내가 된다.· 1963년 4월 인천 인덕의원 집 딸 백경자 여사(의사)와 결혼한다. · 1964년 5월아들 광준이 태어난다.· 1964년 8월 모교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전임교수 발령을 받는다.· 1966년 12월 딸 희정이 태어난다.· 1967년 8월부터 1969년 8월 23일까지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을 지낸다. 당시 법대 학장은 고 이한기 교수였고, 교무과장은 최교수가 존경하던 선배인 고 배재식 교수였다. 오로지 연구에만 전념하려던 최교수는 그의 생애에 있어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된다. 독재정권에 맞서 더욱 거세진 학생시위. 그의 제자들을 탄압하는 독재정권. 그는 상아탑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을 보호해야만 했다. 학생과장 최종길 교수는 학생들을 향해 목청껏 호소했고, 결국은 그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는 경찰과 중앙정보부에 당당하게 맞섰다. · 1969년 8월 24일부터 1970년 2월까지2년 임기인 학생과장직을 연임하게 되는데, 워낙 학문에의 열정이 강했던 그는 미국 하버드 옌칭(Yenching) 연구소의 초청을 받아들인다.· 1970년 3월부터 1972년 8월까지 미국 하버드 옌칭연구소의 지원으로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연구에 전념한다. 원래는 하버드옌칭연구소로부터 1년간의 지원을 약속받았던 것이지만, 그의 학문적 우수성을 인정한 연구소 측은 그에게 1년의 지원기간을 더 연장해 준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귀국 길에 그는 훔볼트재단의 초청으로 6개월간 독일을 방문하여, 헤어진 지 10년 만에 그의 옛 독일 학우들을 만나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1962년에 헤어졌던 독일 학우들은 그를 비롯하여 모두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있었다.· 1972년 8월귀국. 1972년 2학기부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그의 열강이 다시 시작된다. 그는 법학도서관장직을 맡아 활발한 연구활동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해 10월, 유신헌법이 공표된다. · 1972년 11월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정교수로 발령을 받는다.· 1973년 10월유신독재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서울대학교 문리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울대 법대를 중심으로 불붙는다.그 해 8월 중앙정보부는 김대중납치사건을 계획하여 실행에 옮겼으나, 실패로 끝난다. 중정은 대외적으로 커다란 곤혹을 겪는다.· 1973년 10월 16일 오후 2시경 간첩수사에 협조해 달라는 중앙정보부의 연락을 받고 당시 중정 감찰실에 근무하던 막내 동생 최종선과 함께 남산의 중앙정보부청사 안으로 들어간다. 가까운 동료교수에게도 알리지 않고서. 혹시라도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든 절친한 후배교수인 이수성 교수에게 연락하라는 말만을 남기고서….그는 그날 중정을 빠져 나오지 못했다.그 다음 날도 그리고 그 다음 날에도….· 1973년 10월 19일 이른 아침 중정은 그의 동생 최종선에게 최교수가 조사 중 자살하였다는 통보를 한다. 사망시각은 19일 새벽 1시 30분경이라고 말한다. 유족에게 거액의 위로금을 제의하지만 유족들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중정은 유족들이 최교수의 사망에 관해 입을 다물 것을 요구한다. 대신에 간첩 등으로 누명을 씌워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겠다고 약조한다. 유족들은 당시의 살벌한 정치상황 속에서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었다.· 1973년 10월 21일 싸늘한 일요일 아침. 중정의 강제에 의해 가까운 친지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이미 관에 봉해진 최교수의 시신을 인계받아, 중정의 직원들이 앞뒤에서 에워싸고 지켜 서 있는 가운데 마석 모란공원묘원에 안치한다. 후에 마석 모란공원묘원에는 그의 제자 조영래 변호사를 비롯하여, 문익환 목사 등 많은 민주인사들이 모이게 되었고, 자연스레 민주열사묘역이 만들어졌다. · 1973년 10월 25일 중앙정보부는 일본의 언론에서 최교수의 사망에 관해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 어쩔 수 없는 조치를 취한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유족들에게 한 후, 그 날 저녁 소위 유럽거점간첩단사건을 대대적으로 발표한다. 최교수가 간첩이었음을 시인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중정건물의 7층 화장실 창문을 통해 투신자살하였다는 허위발표를 한다. 후에 법무장관을 지낸 김치열 당시 중정 차장이 텔레비전에 나와 기자회견을 갖고 이 발표문을 읽는다.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최교수의 지도교수인 케겔(Kegel) 교수는 당시 법무장관에게 사인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서신을 보냈고, 라이샤워, 박스터 교수 등 미국 하버드대학의 동료교수들은 유가족에게 조의전문을 보내는 동시에 한국정부에 강력히 항의하였다. 그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 1974년 10월 9일최교수와 친분이 깊었던 하버드대 로스쿨의 제롬 코헨 교수는 최교수의 1주기를 맞아 「워싱턴포스트」지에 ‘한국에서의 암울한 1주기(A Grim Anniversary in South Korea)’란 제목의 글을 기고하면서 최교수의 자살설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하며 박정희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1974년 12월 위 제롬 코헨 교수의 「워싱턴포스트」지 기고문을 시노트 신부를 통해 접하게 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신부들은 명동성당에서 ‘최종길 교수를 위한 추모미사’를 올리며, 최교수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고문에 의해 살해되었음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한다. 그 날 오후 중정의 감시와 미행을 피해, 최교수의 미망인 백경자 여사는 어린 두 자녀를 이끌고 명동성당에 가까스로 다다를 수 있었고, 마침 함세웅 신부의 본당수녀를 성당정문 앞에서 만나, 사제단의 신부들에게 안내될 수 있었다. 추모미사에서 그녀는 문정현 신부의 강론에 이어 먼저 떠나간 남편을 위한 기도문을 낭독한다. · 1975년 3월 기독교수협의회의 교수들은 유신정권에 대한 5개의 요구사항을 발표하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최종길 교수의 사인을 밝히라는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기독교수협의회의 총무를 맡아보던 한완상 교수는 서울대에서 해직된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서울대 법대를 중심으로 최교수를 기억하는 학생들과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최교수의 사인규명에 나서자는 각오를 다진다. 이화여대 법대 이철수 교수를 비롯하여 이성호 변호사 등 법대 학생회장단은 최교수의 유가족을 방문했고, 이에 관해 상세한 협의를 한다. 그러나 그 해 5월 광주에서 5·18이 일어났고, 최교수의 사인규명을 위한 노력에 감히 아무도 더 이상 나서지 못했다.· 1988년 10월 사제단 신부들의 도움을 받아 유가족은 최교수사건을 수사해 줄 것을 검찰에 진정하기에 이른다. 형사소송법상 15년의 공소시효기간이 경과되는 해였다. 검찰은 형식적인 수사를 했고, 관련자들은 담합해서 입을 맞춰 검찰에 거짓을 진술했고 (이들 관련자들 중 일부는 그들이 당시에 강압을 못 이겨 거짓을 말했음을 2000년에 설립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실토했다), 결국 검찰은 10월 18일 타살의 증거도, 자살의 증거도 찾지 못한 채로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공소권이 없다는 형식적 수사결론을 언론에 발표한다. 진정인인 유가족과 사제단엔 아무런 공식적인 답변도 없었다. · 1993년 10월 19일 최교수의 20주기를 맞았다. 최종길 교수의 묘소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박형규 목사는 김영삼 정부에 대해 최종길 교수의 사인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그러나 언론은 침묵했고, 김영삼 정부는 이를 위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1998년 초독일 훔볼트재단 이사장 뤼스트(Lust) 박사는 최교수의 사인규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는 서한을 폴러스(Vollers) 주한독일대사에게 보냈고, 폴러스 대사는 한국정부에 훔볼트재단과 주한독일대사관의 의사를 전달한다.· 1998년 10월 17일 최종길교수의 25주기를 맞는다. 최교수가 사망한 1973년, 같은 해에 중앙정보부의 납치사건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던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는 밝혀야 한다. 배재식 교수와 이수성 전 총리가 중심이 되어 「최종길 교수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결성되고, 서울대 법대 근대법학교육백주년기념관에서 최교수의 25주기 추모식을 거행한다. 25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서야 그가 수학하고 가르치던 서울대 법대교정에서 추모식을 거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99년 5월 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을 효율적으로 돕고자 하는 목적으로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추진위원회」가 결성된다. 공동대표로는 김승훈 신부와 백충현 교수(서울대학교 법과대학)가, 실행위원장은 최교수의 제자 이광택 교수(국민대학교 법과대학)가 맡는다. 이 위원회는 국회에서 〈의문사문제 해결을 위한 법적 모색〉이라는 심포지움을 열고, 『최종길교수 고문치사사건관련 자료집』을 발간한다. · 2000년 10월 의문사유가족들의 420여 일 동안에 걸친 국회 앞 천막농성의 결실로 「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대통령소속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가 발족되었다.· 2000년 11월 23일 유가족을 비롯하여 최종길 교수를 기억하는 인사들 347명은 최교수의 사인을 규명에 달라는 진정서를 위원회에 접수시킨다.· 2002년 5월 24일 위원회는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사건에 관해 1년 반 동안 조사를 진행했고, 그 조사에 대한 최종결과를 발표한다: 최종길 교수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에 의해 사망하였다. 이를 은폐하기 위해 중앙정보부는 최교수를 간첩으로 조작했다. 최교수는 1973년 10월 16일 오후 2시 경 중정에 의해 불법 구금된 후 사망에 이르기까지 3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다. 위원회는 결정문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최종길 교수에 대한 고문 및 그로 인한 사망에 가담한 차철권, 김상원은 형법 제125조(폭행, 가혹행위), 형법 제259조(상해치사)의 경합범, 변영철은 고문에만 가담하여 형법 제125조(폭행, 가혹행위), 사건 발생 후 허위서류 작성에 가담한 조일제, 안경상, 장송록, 서철신, 정낙중, 권영진, 차철권, 김상원 등은 허위공문서작성죄, 동행사죄(형법 제227조, 229조)가 성립하지만 모두가 위 범죄일로부터 형사소송법 제249조에서 정하는 공소시효가 경과되었음이 명백하므로 범죄에 가담한 자에 대하여 고발 및 수사의뢰를 하지는 아니한다. · 2002년 5월 29일 최교수의 유가족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협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소장을 서울지방법원에 접수시킨다. 아직까지도 입을 열지 않거나 거짓진술을 하고 있는 관련자들이 법원에서는 진실을 말하기를 기대하면서.· 2002년 10월 17일 오후 6시 30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최종길 교수의 29주기 추모식을 겸하여 최종길교수를추모하는사람들의모임이 펴낸 아직 끝나지 않은 죽음―아! 최종길 교수여(공동선) 추모문집의 출판기념식을 거행한다.· 2003년 10월 17일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에서 ‘고 최종길 교수 30주기 추모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서울대 법대는 근대법학교육백주년기념관 소강당을 ‘최종길교수기념홀(현 최종길홀)’로 헌정한다.· 2004년 7월 6일 서울중앙법원은 최종길 교수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국가배상청구소송에 대해 피고인 국가가 10억원을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의 화해권고결정을 내린다. · 2004년 7월 23일 위의 화해권고결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교수의 사망에 대해 정부에서 아무런 공식적인 사과도 하지 않자, 최종길 교수의 유가족은 서울중앙법원에 화해권고결정에 대한 이의 신청을 제출한다. 최교수의 미망인 백경자 여사는 “피고인 국가가 지금이라도 자기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소송을 취하할 의사까지도 있으나 피고인 국가가 소멸시효제도의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마당에 금원을 매개로 한 화해에는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다.· 2005년 1월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교수의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판결을 내린다. 이 판결에 대해 최종길 교수의 유가족은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한다.· 2006년 2월 14일 서울고등법원은 마침내 피고인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다. 법원은 “국가권력이 나서서 서류를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직적으로 사실을 은폐하고 고문 피해자를 오히려 국가에 대한 범죄자로 만든 사건에서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를 제시했으며, 법무부는 상고를 포기해 항소심 판결이 확정된다.· 2017년 김학민 선생이 『만들어진 간첩: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그리고 최종길 교수 죽음의 진실』(서해문집)을 출간한다.· 2023년 5월 18일 최종길 교수의 50주기를 맞아 〈최종길교수50주기추모위원회〉(공동대표는 김학민, 박용일, 이광택, 이창복, 이해학, 장영달(가나다순))가 발족하였으며, 국회에서 인재근·기동민·진성준 의원과 함께 '국가폭력 범죄의 공소시효 배제 입법화'를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한다. · 2023년 10월 18일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원장 김종보)은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법적, 사회적 해결을 위하여〉를 제목으로 최종길교수50주기 추모 학술회의를 서울대 최종길홀에서 개최한다.· 2023년 10월 19일최종길교수를추모하는사람들의모임, 민청학련, 천주교인권위원회, 49통일평화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동주최하고 최종길교수50주기추모위원회가 주관하여 〈최종길교수50주기 추모―국가폭력근절 선포식〉을 서울유스호스텔(구 중앙정보부 본부 건물)에서 개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