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2000년 ≪다층≫을 통하여 등단한 이후 13년 만에 펴낸 첫 시집이다. 시인은 웹 월간 시 젊은시인들 동인, 부산작가회의 청년문학위원회 무크지 ≪쨉≫ 편집위원, 시전문 계간지 ≪신생≫ 편집장 등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로 그동안 축적해온 탄탄한 내공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시집의 해설을 맡은 김대성 문학평론가는 이은주 시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라 명명한다. 우울과 상처와 함께 그것을 감싸 안고 극복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시인. 시인의 걷기는 ‘멈추지 않기 위해 걷는다’는 ‘의지의 내딛음’이다. 목적지에 당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다는 그 ‘행위의 지속’에 있다. 시인은 존재의 정주가 아닌 존재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단단한 막을 찢어버리고 완고한 기둥을 태워 구름과 바람이 되어 무수한 강으로 흐르고자 한다.’ 존재의 흐름에 동참하고 그 가능성을 열어가는 걷기, 이는 혼자만의 걷기가 아니라 어울림과 연대의 걷기이다.

제1부
우울한 케이크 가게
우편함
마른 꽃
불손한 기도
시간 속엔 냄새가 배어 있다
생은 주먹감자를 먹이며
악몽
바다, 녹슬다
모자
죽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데
더듬이, 섬광閃光처럼
쿵
A/주홍빛 안개
무거운, 숲
닫힌 봄

제2부
프로이트의 의자
구두
수염
게알
아버지의 봄
雨傘
나란히 걸으며
질긴 거짓말
마흔 즈음에
이제는
분꽃
수상한 일
완행열차
떠도는 말
강철나무
휴먼트리
가을 파리

제3부
시간의 얼굴을 보면
훅
무릇
붉은 혹
구멍
각도를 달리해도 발가락은 없다
백스페이스
멈추면 쓰러진다
입 큰 의자
갈증
붉은 코
모난 것은 암실 속에서 자란다
닫힘
건축
침묵에게
창創,창窓하다

해설 새로운 초록 김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