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
그야 남학생도 그렇지. 밤낮 하학 시간이면 활동사진 이야기밖에 하는 것이 없구먼……. 무슨 ‘파리 너구리’가 잘 생겼느니, 무슨 나는 ‘리리린킷스’가 어여쁘니 무엇하고 지껄이는 것을 보면 가관이지. 그리고는 계집애들처럼 다홍 허리띠를 매지 않나, 선생들처럼 값 많은 와이셔츠를 사 입지 않나, 밤낮 비단 수건 싸움만 하고……. 그것들이 졸업을 하고 나가면 무얼 하겠누……. 활동사진 변사되라면 그거나 잘할까. 조선서는 학생들밖에 바랄 것이 없다는데 학생들이 글쎄 모두 그 지경이로구먼. 글쎄 장난으로라도 들음직한 말을 하는 학생을 못 보겠으니 그게 무슨 학생이야. 꿈에라도 저희들의 늙은 부모가 피땀을 짜고 학비를 보내 주는 심정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갑
그러니 그것들이 공부는 하면 무엇 한단 말인가. 그래 음악회라니 조선 사람이 지금 돈 들여서 음악 공부하고 앉았을 때란 말인가. 너도 죽네 나도 죽네 하고 모두 죽게 되는 판에 음악 공부를 한다고 떠드는 녀석을 보면 이마에 똥만 들어 보여서 화가 나서 못 견디겠네. 글쎄, 그렇게 철이 없는 것들이 그저 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