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자의 싱가포르일기와 제7 시집 중 대표시 세편을 소개합니다<br /><br />1. 사진기 / 고현자<br /><br />속살 고스란히 드러낸 창문 너머로<br />걸어 나온 새싹의 냄새에<br />도사리듯 앉아 있던 애꾸<br />신발을 신는다<br /><br />게으른 눈을 깜박이는<br />만삭의 먼지 타래가<br />아수라장인 채 방치된 거실은<br />진공기 소리만이 분주하다<br /><br />안방까지 쳐들어와 <br />햇살을 수유하는 봄<br />한점 빛도 허락하지 않는 앙다문 눈은<br />벌써 쫑긋 나온 셔터를 누르고 말 기세다<br /><br />아지랑이 가득 찬 한나절임에도<br />한 발짝도 떼지 못한<br />호수 같은 왕눈이<br />애꿎은 계절만 원망이다<br /><br />2. 내 안에 담은 온실 / 고현자<br /><br /><br />어느 정도의 산수화를 위해 <br />제어된 조건을 조성하도록 <br />유리나 투명 재료로 <br />그려 넣은 듯 담박한 온실<br /><br />밀고 들어온 햇살의 열정을 가두어<br />마음의 온도를 따뜻하게 하여<br />수줍은 금봉화도 상큼한 딸기도 <br />억세게 자란 잡풀도 가정을 이루게 한다<br /><br />빨간 열매를 품은 앙증맞은 시어들이 <br />펄쩍펄쩍 뛰어오르기도 하고<br />진드기 같은 해충에 방울토마토가 <br />아파하는 비탄도 있다<br /><br />이렇게 통제한 환경에서 <br />극심한 기상 조건이나 질병으로부터 <br />가족을 보호하는 일관된 습도 <br />성장통마저도 아물게 하는 곳<br /><br /><br /><br />3. 밤의 외출 / 고현자<br /><br /><br />하늘이 금빛으로 물들 때쯤<br />불태우듯 드날리는 복사꽃에<br />질주하며 밀려오는 연정은<br />세상의 비밀을 털어놓을 듯<br />정의되지 않은 밤을 포옹한다<br /><br />거리는 연분홍 교향곡으로 발랄 거리고<br />황혼의 발자국이 회춘이나 하듯<br />별은 다시 태어나고 <br />도시의 네온 불빛도 흥분한다<br /> <br />달빛도 성채도 하나 된 한밤중<br />그대 곁으로 가는 길에 <br />아무도 모르게 꽃잎 몇 장 뿌려 놓고 <br />행복을 심었던 카페를 지나며<br />익숙한 찰나의 기억도 길게 담아 본다<br /><br />꿈인 듯 현실이 오가는 파라다이스<br />먼 바에서 들려오는 음악의 메아리처럼<br />지나는 바람결에라도 흩어질까 맘졸이며<br />연기처럼 감미로운 여백을 채워본다<br /><br />밤의 중심에 누워있던 나의 영역은<br />새벽이 다가올 때까지 희열로 가득 차고<br />풀어헤친 심장은 공중을 부양 중이다<br />따지고 보면 나는 늘 그랬었다<br /><br /><br />

싱가포르 일기
사진기
5월이면
아프다
비상
풍란(風蘭)
움(芽 )
마중
공허
앙살한 햇살
봄
그물
하루
산수유
춘치자명 (春雉自鳴)
연민
앵화(櫻花)
엄니의 봄
라일락이 질 때
봄 길
두견이
중년의 병
쉬는 날
그네
괴연
함께
해진호
스프링 마운틴
여행
불꽃
갈망
꽃잎
오월
그런 사람
향기
아지랑이
내 안에 담은 온실
춘우
밤의 외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