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한국 멜로영화의 흐름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이 ‘죽음’이라는 모티브와 ‘가족의 부재’ 그리고 (전통적 멜로에서의 ‘여성의 비극’과 달리) ‘남성의 비극’이라고 했을 때, <물고기자리>는 한편으로는 그 자장 안에서 머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장을 벗어남으로써 변주를 이루어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영화는 철저하게 ‘애련’이라는 여성의 ‘죽음에 이르게 되는 사랑의 고통’이라는 궤도를 따라가면서 낭만적인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병적인 집착과 자기 파괴로 바뀌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가족의 부재’라는 경향에서도 드러나듯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주위의 관계들로부터 고립되거나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소외된 존재들로 자주 묘사되는 시점에서 그러한 조건들을 한 여성의 이상 심리를 설명하고 자연화시키기 위해서 동원하는 방식에서 읽어볼 수 있다. 비디오가게라는 작은 사업을 하며 애인 없이 살아가는 독신 여성, 그녀의 공간을 감도는 차갑고 푸른 기운과 모든 욕망이 거세된 듯한 그녀의 조용하고 무기력한 이미지. 이 모든 것들은 영화의 중반 이후 한 남자와의 만남으로부터 비롯된 그녀의 설레임과 기대가 왜 광기와 파괴적 충동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해 주는 암묵적인 배경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새드무비(Sad Movie)’라는 이름의 비디오 가게를 비롯하여 다양한 도시적 공간들, 커트 코베인의 음악과 재즈 그리고 <바그다드 카페>와 <사랑한다면 이들처럼>과 같은 영화 등등의 대중문화들을 동원하여 주인공의 심리와 존재성을 당대의 문화적 지형도 안에서 새겨놓고자 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여주인공의 감정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시각화하면서 드라마를 축조해 나가는 미덕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