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림책을 만난 순간은 너무 어려서 기억나지 않지만, 성인이 되어 다시 그림책을 만난 순간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미술대학 졸업을 앞두고 학교 과 사무실을 통해 소개받은 일, 아르바이트를 잠깐 해야지 생각하고 찾은 곳은 출판사였다. 내가 맡은 일은 그림책 삽화를 그리는 일이었고 편집자는 참고할 만한 몇 권의 그림책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존 버닝햄, 앤서니 브라운, 이수지, 백희나 작가를 만났다.
그들처럼 멋진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그림책을 생각하며 책상에 앉으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힘을 빼자 다짐해도 그게 잘 안 됐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림책을 생각하면 수긍이 되는 부분이 있다.
그림책 작가 지망생에서 그림책 독자로 나의 자리가 바뀐 지금, 나는 그림책을 더 좋아한다. 정념없이 바라보게 된 그림책은 처음 나를 매료시켰을 때처럼 여전히 아름답다. 그림책은 잘못이 없다. 그림책을 향한 나의 욕망이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편안한 어깨로 내가 사랑에 빠진 그림책 이야기를 실컷 하고 싶을 뿐이다.
‘수신지가 사랑에 빠진 그림책’에는 글과 그림을 한 사람이 작업한 그림책만 소개했었다. 글과 그림을 다른 사람이 작업한 그림책에는 사랑에 빠진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용과 그림이 각각 좋음에도 미묘하게 밋밋하거나 한쪽이 다른 쪽에게 잠식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프롤로그
1장 무릎 꿇은 사랑고백 - ‘파도야 놀자’, ‘동물원’
2장 언제나 부지런했던 언니 - ‘도토리랑 콩콩’
3장 책으로 배웁니다 - ‘책상 잘 쓰는 법’
4장 너무 좋아서 두 발이 동동 - ‘장수탕 선녀님’
5장 한 개의 노로 할 수 있는 일 - ‘노를 든 신부’
6장 안녕! 잘 지내. 특히 마음 조심해 - ‘마음 조심’, ‘식빵 유령’
7장 탄생을 이야기하는 두 가지 방법 -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엄마와 복숭아’
8장 우리 이제 친구지? 많이 소문내 줘! - ‘친구의 전설’
9장 걱정이랑 불안이랑 뒹굴뒹굴 같이 살자 - ‘걱정 상자’
10장 우리는 서로를 관찰한다 -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엄마 도감’
11장 이보다 사랑스러울 수 없는 문수를 소개합니다 - ‘문수의 비밀’
12장 스스로 내는 용기의 힘 - ‘씩씩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