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 년을 총소리에 머리가 이렇게 시였다……! 기승스런 그 총소리……! 그여쿠 일을 저즐구라야 말던 총소리……. 세상에 무엇이 상서롭지 못하네 무엇이 상서롭지 못하네 해두 총소리같이 상서롭지 못한 건 없어. 백홍(白虹)이 관일(貫日)을 허구, 살별(?星*혜성)이 나구 하면 나라이 망하든지 큰 재변이 일던지 한다지만, 총소리야말루 불길할 증조야. 팔십 평생을 두구 보아온 배 총소리 잦구서 천하가 편안한 적을 못 보았으니. 총소리 잦구서 나라이 무사한 적을 못 보았으니……. 총소리 한 번에 세상이 뒤집히구, 그러는 바람에 머리가 시구……. 팔십 년을 두구 그 풍상을 치루구 나니, 머리가 이렇게 시였구나!”
한 올 없이 다 센 할머니의 머리는 휘황한 전등불에 은침같이 곱게 빛난다.
손자며느리 정옥은, 그 올올이 센 할머니의 센 머리 한 올 한 올에 가서, 팔십 년 이짝, 파란 많은 조선이 겪어온 파란의 자취가 역력히 깃들어 있는 듯싶어, 새삼스럽게 눈이 할머니의 센 머리에 멎어 오래도록 옮지 않는다.
“나는 총소리와 야숙히두 인연이 깊어. 낳기를 벌써, 난리 속에서 총소리를 들으면서 난 사람이니!”
이 말로써 비로소 말머리가 잡힌 할머니의 면면한 회고담은 인하여 명주꾸리가 풀리듯 곰곰이 풀리어 나오기 시작하였다.